말씨, 말씀, 말투~~
 
등산모임이 있는 날에 한 친구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손자를 봐야 한답니다.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유독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냅니다.

“그 친구 왜 그리 살아 ?
그러니 허구한 날 붙잡혀 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넨 손자가 지방에 있지?
옆에 있어봐 똑 같아”

손자양육이 논쟁으로 커집니다.
“난 처음부터 선언했어, 내가 애를 보면 성을 간다!”

‘못 생긴 남자와는 절대 결혼 않는다’ 는 처녀!
‘난 죽어도 요양원에는 안 간다’고 한 선배!
‘딱 100세만 살 거야 ' 호언했던 대학 동기...

그런데 어쩌나, 다 헛 맹세가 됐으니까요.

여자는 못 생긴 남자와 천생연분을 맺고 선배는 치매가 들어 일찌감치 요양원으로 향했지요.

나이 들며 갖춰야 할 덕목이 ‘절제’입니다.
삶에 고루 적용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조심’하라는 뜻이 있지요.
무엇보다 ‘말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듣는 귀가 둘인데 비해 말하는 입은 하나뿐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도 많습니다.

같은 말인데도 누구는 복이 되는 말을 하고 누구는 독이 되는 말을 합니다.

황창연 신부가 말하는 말의 세 부류도 같습니다.
말씨, 말씀, 말투가 그것이죠!!

씨를 뿌리는 사람(말씨)!
기분 좋게 전하는 사람(말씀)!
말을 던지는 사람(말투)이 있는 것처럼 말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말씀은 말과 다릅니다.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같이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말씀이라 하지요.
말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초등생 어린이에게
“씩씩하고 멋지구나 넌 장군감이다.”
“넌 말을 잘하니 변호사가 되겠구나."

이렇듯 말에 복을 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좋은 언어 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전철에서 중년 여인이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넵니다.
 “어쩜 그렇게 곱게 늙으셨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시큰둥한 표정입니다.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내리기 무섭게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늙은거 누가 몰라.”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프랑스 작가 장자크 상페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 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빤한 얘기인데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줍니다.

이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로 받아 들여지고 서로의 삶과 이야기를 격려해주는 말 효과를 높입니다.

이를테면, 누가
“이번에 터어키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좋은 곳이죠 나는 두 번 가봤어요.”  이렇게 말을 받으면 일단 주춤하게 됩니다.

이럴 때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정말요?  어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줍니다. 얼쑤 같은 추임새로 상대를 신나게 해주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사용하나요?
자기를 앞세운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 주기가 어려워집니다.

오늘도 내가 한 말을 돌아 보면서 느낌표와 물음표가 인색했음을 깨닫습니다.

내 말에 감탄하며 나의 감정과 안부를 물어 주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말이란 닦을수록 빛나고 향기가 납니다. 말할 때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합니다.

말을 나눌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늘 염두에 두라고 합니다.
적어도 失言(실언)이나 虛言(허언) 같은 말실수는 막아야 하니까요?

그러면 덤으로 얻는 것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리 말을 예쁘게 하세요 ?”
“복 들어올 말만 하시네요.”
정겨운 말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2020년 부터는 나자신이 먼저 실천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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